1만3000원으로 1000만 원 빚 없애는 마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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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3000원으로 1000만 원 빚 없애는 마술사들

[쿨머니, 소비는 투표다]<금융편-1>금융소비자네트워크의 부채 탕감 운동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스무 살에 진 빚 100만 원을 12년 동안 갚지 못해 추심업체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 된 ‘신용불량’ 청년 A씨. 그는 4월 말 우체통에서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기이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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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채무 중 원금 100만 원에 해당하는 채권을 사단법인 희망살림이 2014년 4월 10일부로 매입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위 채권에 대해 어떠한 청구권도 행사하지 않고 즉시 파기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빚을 대신 없애줬다는 얘기였다. 편지에는 ‘채권추심이나 유사한 채권자 연락을 받았다면 연락해달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빚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이 마법 같은 일은 어떻게 벌어진 걸까. 

◇1300만 원 들여 4억6000만 원 빚 없애 

지난 4월 14일, A씨처럼 10년 이상 빚을 갚지 못했던 소액 채무자 117명이 일제히 해방됐다. 희망살림, 에듀머니, 녹색소비자연대, 민생연대 등 금융소비자네트워크 회원들은 금융감독원 앞에 모여 부채 타파를 외치며 원금 4억6000여만 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불 태워 없앴다. 

부실채권 중 77%는 채무자 연령이 30~40대였다. 채권 중 81%는 10년 이상 연체된 장기채권이었고, 평균 금액은 400만 원이었다. 이 단체는 채무자들이 20~30대 청년기에 진 몇 백만 원 빚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추심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4억 원이 넘는 채권 탕감에 들어간 돈은 1300여만 원. 일반시민 140여 명이 1만~2만 원 씩 소액기부하거나 모금파티에 참여해 모았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금융소비자네트워크 회원들과 이인영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부실채권소각-빚제로 다시살기 운동 제안 기자회견"을 갖고 부실채권을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4.4.14/뉴스1



◇부실채권 투자의 원리 활용해 117명의 빚 탕감 

어떻게 원금의 2.8%밖에 안 되는 돈으로 전체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걸까. 경제교육 사회적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사진)는 “최근 인터넷에서 재테크 방법으로 소개되어 인기를 끈 부실채권, 일명 NPL(Non-performing Loan) 투자와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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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인터뷰

금융회사는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손실로 처리해 버리거나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 버린다. 이것을 헐값에 매입한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연체이자와 법정비용까지 청구한다. 회수에 실패한 채권은 다시 또 다른 대부업체에 팔린다. 채권의 가격은 점점 떨어진다. 빚이 ‘땡 처리’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체기간에 따라 100만 원짜리 채권이 3% 전후 즉 3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갚아야 할 돈은 ‘땡 처리’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체이자가 불어나면서 갚아야 할 돈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제 대표는 “극단적으로는 100만 원 원금의 채권으로 1000여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며 “연체자들은 공식적인 주소지와 근무지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여러 채권자들로부터 끝도 없는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손실 처리된 채권으로 300억 원 이상 돈 버는 은행들


채무자가 자신의 빚을 3만 원에 사서 탕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지금의 금융시장에선 일어날 수 없다. 4년 전에 진 빚으로 채권 추심을 당했던 한 채무자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채권을 찾을 수 없어 부채 증명을 하지 못해 아직도 회생에 이르지 못했다. 부실채권이 된 채 여기저기 대부업체를 떠돌다 실종된 것이다. 

부실채권 거래시장의 이러한 원리를 사용해 큰 돈 버는 큰 손은 따로 있다. 채무를 제공한 은행들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실채권이 늘자 은행들은 부실채권 투자 및 관리전문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2009년 신한 국민 하나 기업 우리 농협은행 등 6개 은행이 설립한 유암코다. 

유암코는 지난해 부실채권으로 105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 회사의 주주인 은행들은 올해 주당 41만2000원을 배당 받게 됐다. 은행별로는 신한 등 4개 은행이 350억 원, 우리 농협은행이 각 300억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 주당 배당금의 3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7억 원 모아 155억 원 빚 없앤 미국 '롤링주빌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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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대. /사진제공=디베이트닷오르그(debate.org)


채무자가 돈 갚을 능력을 잘못 측정하더라도 채무자들은 돈을 잃지 않고 되려 돈을 버는 현상은 금융위기의 진원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이에 시민단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2012년 11월부터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라 불리는 빚 탕감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빌리'란 일정 기간마다 죄 즉 빚을 탕감해주던 오래된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 말이다. 

미국 시민들은 67만7552달러를 모아 원금 1473만4569달러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태웠다. 우리 돈으로 치면 7억 원으로 155억 원의 빚을 없앤 것이다. 2693명이 갚지 못하고 연체했던 빚이었다. 

◇"10년 이상 못 갚는 빚, 함께 없애자" 온라인 모금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비 때문에 신용카드나 빚을 쓰고 소득이 적어 그 빚을 갚지 못하는 악순환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대출잔액 비율이 2012년 276%에서 2013년 414.8%로 급상승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부채가 증가하는 요인에 대해 저소득층은 절반 이상인 52.1%가 생활비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고소득층의 거의 절반(48.7%)는 부동산 구입과 사업자금 마련 등 투자 때문에 부채가 는다고 응답했다. 이 연구원은 저소득층 20%가 채무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금융소비자네트워크는 이들에게도 '주빌리'를 주자며 모금을 벌이고 있다. 1만3000원을 기부하면 1000만 원, 3만9000원을 기부하면 3000만 원 상당의 빚을 없앨 수 있다. 희망살림은 3000만 원을 모으면 3500~4000명의 장기채무자가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태현 희망살림 대표는 "채권이 헐값에 거래되면서 채무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부채 탕감 운동에 동참해 부실채권 거래시장의 현실이 폭로되고 인간적인 금융서비스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채 탕감 모금은 굿펀딩(www.goodfunding.net)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곳에선 누구나 1만3000원이면 불우한 누군가의 빚 1000만 원을 없애주는 마술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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