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대신 ‘열정’으로 합격했다…취업 성공담 2제
- 진로와 취업
- 2012. 10. 16. 12:59
“마케팅책 독파 ‘스토리’로 승부”
“좋아서 만든 광고 취업 밑거름”
올 하반기 대졸 공채 역시 어렵다. 정규직 등 괜찮은 일자리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이른바 ‘스펙’(취업을 위한 자격: 학벌, 영어성적 등) 상향 평준화로 구직자들은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 국외 봉사활동과 공모전까지 내몰리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펙을 보지 않는다는 기업의 ‘열린 채용’은 구직자들의 꿈을 북돋는 희망일 수도 있고, ‘계급장 떼고 붙는’ 더 힘든 경쟁일 수도 있다. 이 힘든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만나봤다.‘열정과 책.’ 오전 10시와 오후 6시, 각기 다른 시간에 만난 취업 성공자의 입에선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스펙 대신 열정 하나로 취업에 성공했지만, 이들이 별달리 다른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영어책 대신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책을 독파했고, 공모전 등 화려한 수상경력도 “좋아서 한 거지 스펙을 쌓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현대자동차의 ‘열린 채용’ 취업 성공자 염여진씨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 전시된 차량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대외활동도 마음가는대로 열심히
다른기업 서류전형선 번번이 탈락
“면접기회조차 못얻었더라면…”■ 내 앞에 끌리는 것을 찾아 현대자동차에 합격한 염여진(23)씨 전공은 한방재료가공학이다. 영어점수는 토익 900점 수준에 학점은 3점대 후반이다. 특별하다고 보기 힘든 스펙에다 국외연수도 다녀온 적 없다. 한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의학 관련 일을 할 생각에 고른 전공이어서 자동차와는 거리가 멀다.그러다가 마음을 돌린 게 대학 때 간 국외탐방이었다. “파리에 있는 화장품회사를 갔는데, 그곳에서 본 마케터의 일이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염씨는 그길로 진로를 바꿨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마케팅을 하기로 결심했죠.” 막상 결정은 했지만 염씨는 막막했다고 한다. 전공이 다르니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염씨는 책부터 꺼내들었다. “아마 도서관에 있는 기본적인 마케팅 관련 책을 다 읽었을 거예요.”또 학점·영어성적과 씨름하는 대신 대외활동에 뛰어들었다. “이력서 한 줄 넣으려 국토대장정 등을 한 건 아니에요. 내 앞에 끌리는 것을 찾다 보니 밑거름이 된 거죠.” 그곳에서 염씨는 정보도 얻고 인맥도 쌓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쳐나갔다고 한다.그는 지난 4월 현대자동차 ‘열린 채용’ 인턴에 합격했고 8월 정식 합격통보까지 받았다. 수천명이 지원해 116명만 통과했다. “사실 엄청나게 불안했어요. 다른 기업 서류전형에선 번번이 떨어졌거든요. 나는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면접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에 속상했죠.” 학교나 전공 대신 자기소개서와 과제로 평가하지 않았다면 아마 염씨가 합격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기회를 보며 준비했을 거예요. 스펙 대신 스토리로 승부해야죠.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말이죠.”
에이치에스(HS)애드에 근무하는 제갈현열씨가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무실에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
대통령상 등 43번 받은 실력으로 돌파
모교 학과서 메이저 입사 유일
“지방대 기회 안주는 사회 문제”■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불살라 또다른 취업 성공자 제갈현열(29)씨는 지방 사립대인 계명대를 나와 대형 광고회사인 에이치에스(HS)애드에 인턴을 거쳐 올해 정식으로 입사했다. 학점은 4.0이고, 토익은 지원서를 채울 점수만 필요해 ‘한 줄로 찍어’ 230점을 얻었다. 전공은 광고홍보와 문예창작. 좋지 않은 스펙인데, 그는 ‘유일무이’한 취업자다. 그는 이 학교 광고홍보학과가 개설된 지 12년 만에 메이저 광고회사에 입사한 유일한 졸업생이고, 회사에서도 유일한 지방대 출신 광고기획자라고 한다.제갈씨가 취업을 할 수 있었던 힘은 광고·영상 관련 공모전에서 대통령상 등 43번을 수상한 실력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공모전에 많이 참여하는 게 ‘취업의 왕도’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이력서에 들어가는 것은 잘해봤자 수상경력 3개면 끝나죠. 보통 후배들은 이번 대회 상 받으면 영어공부 한다고 말해요.” 그는 “공모전으로 취업을 노리는 것이 스펙을 쌓아 취직하는 것보다 4만배쯤 어렵다”며 “좋아하고 지치지 않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했다.사실 그의 노력은 치열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마케팅 관련 책을 전부 읽으며 매달렸다고 한다. 광고를 만드는 게 재미있긴 하지만, 기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란 말은 쉽지만, 사실 실천하는 사람은 없거든요.”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은 경계했다. “저 때문에 이 사회가 개선되어야 할 게 안 보이고, 후배들이 특별한 노력을 해야만 취업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싫어요. 이런 노력을 해야 취직을 할 정도로 지방대생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가 문제죠.”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43번 공모전을 수상한 제갈씨도 지방대생이라 입사지원조차 거부당하는 등 7군데에서 떨어졌다고 한다.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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