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또 다른 세상을 가능케 하는 힘

사회적 경제센터_조우석(http://blog.makehope.org/smallbiz/887?category=47) 

<협동조합, 또 다른 세상을 가능케 하는 힘>



1. 마피아에 맞서 싸우는 이탈리아 협동조합

“마피아, 이탈리아 1위 기업”, “마피아, 금융위기 기간를 거치면서 이탈리아 1위 은행으로 등극”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마피아는 이탈리아 내에서 막강한 조직이자 심각한 골칫거리이다. 납치, 매춘, 무기밀매부터 사금융, 농업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내에서 마피아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이다. 정부에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마피아에게는 내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피아는 이탈리아의 국가적 문젯거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정부는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있는 실험을 했다. 
일명 리베라 떼라(Libera Terra)라고 불리우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정부는 마피아에게서 토지를 압수해서 지역의 협동조합에게 임대를 준다. 협동조합은 20~40대 나이 대에 있는 지역의 청년들을 고용해서 이 땅을 경작해서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이 사업을 운영하고 리베라 떼라(Libera Terra - piolatorre.blogspot.com) 협동조합은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중시하는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와인, 파스타, 올리브 유 등을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B 형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사실 이 실험은 지역의 협동조합과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는 매우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탈리아 내에서 마피아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마피아가 본격적인 범죄조직을 구성하면서 국가 중심 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라고 알려져 있다.하지만 마피아가 이탈리아 내에서 결정적인 세력으로 뿌리내리고 통제 불능의 조직으로 ‘성장’한 것은 2차 세계 대전 무렵이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후 공산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이탈리아 내 정치인과 마피아의 결탁을 배후 지원했다. 해방 후 한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고 현재까지 기득권을 유지했듯이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그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 대부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마피아는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사업’에 방해되면 치안판사, 장군, 당수, 정치인, 주지사 할 것 없이 서슴없이 살해한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마저도 신변보장을 대가로 마피아에게 ‘백지수표’를 상납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올 정도로 마피아의 ‘공권력’은 실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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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명기한 협동의 정신

그런데 지역의 청년과 협동조합이 마피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용감하게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이탈리아에 뿌리내리고 있는 강한 협동조합 정신에 그 원동력이 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는 공화국헌법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지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공화국 헌법 2조와 45조에서 비투기적이고 호혜적인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순기능을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적절한 수단을 통해서 협동조합을 장려하고, 적정한 감독을 통해서 협동조합의 성격과 목적이 유지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동시에 연대의 중요성 또한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에 사적소유와 재산권을 명시했듯이, 이탈리아 헌법에는 협동조합과 그것의 기초를 이루는 연대의 중요성을 명시했다. 
물론 헌법에 명시된 것과 그것이 현실에서 장려되고 발전되는 것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우리나라는 헌법 123조를 통해서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 국내 종사자 기준 250인 이상의 중견기업 비중은 0.04%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시장 자본주의 첨단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25% 수준이고, 중소기업 강국으로 불리는 독일의 대비 0.000034% 수준이다. 현재 중소기업 매출액의 85.1%가 대기업 하도급 거래에 의한 것일 정도로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계열화와 이들에 의한 시장지배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어떨까?

2006년 이탈리아상공회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협동조합 경제는 1,130억 유로 규모의 생산액을 만들면서 백만 명이 넘는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조합원만 700만 명 이상이다. 유럽에 30만 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있는데 이 중 4만 3천여 개가 이탈리아에 있다. 사실상 이탈리아가 유럽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만 1만 5천여 협동조합이 있다. 로마냐의 볼로냐 지역에 있는 협동조합 슈퍼마켓인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 등록 조합원은 100만명, 연매출 20억유로에 달한다. 특징적인 것은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마트 물건의 70%가 볼로냐 지역 산품이라는 점이다. 협동조합과 지역경제가 상생구조를 갖추고 있는 볼로냐 지방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이탈리아 평균의 2배인 4만 달러에 달한다.


2. 협동조합은 의외로 보편적이고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이다

사실 우리에게 협동조합은 그리 익숙치 않은 조직이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유독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협동조합은 170년 이상의 역사와 경쟁력을 갖춘 보편적인 기업형태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니쉬 크라운 협동조합은 덴마크 양돈 사업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은행인 라보뱅크 역시 협동조합 은행이다. 이 은행의 총자산은 1,065조(2011년 기준)로 우리나라 최대은행인 KB 금융지주의 총자산 370조(2012년 6월 발표 기준)의 2.78배 규모에 달한다. 노르웨이 협동조합은 자국 내 우유 생산량의 99%를 출하한다. 일본 가구 3분의 1이 생협조합원이다. 세계 4대 통신사인 AP 통신 역시 협동조합이고 스페인 최대 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은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규모이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300대 협동조합 자산총액(1조6000억 달러)은 스페인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인도에는 5만 8,000개 협동조합이있고 조합원만 2억 4,000여 명에 이른다. 미국 전기협동조합은 4,000만 명의 조합원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한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전 세대의 45%가 협동조합 주택에서 살고 있다. 스웨덴 동네진료소의 66%가 협동조합이다. 브라질 유니메드 그룹은 364개의 협동조합과 9만3,000여 명의 의사를 거느라고 8만3,000 곳의 병원과 진료소를 운영하며 1,000만 명의 주민에게 의료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 연합에 30만 개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이들은 480만 개의 일자리와 1억 4000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농업생산량의 50%를 협동조합에서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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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동조합의 역사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협동조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면, 이런 협동조합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사실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이 무엇이냐에 대해 합의된 결론은 없다. 인류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필요와 관습에 의해 협동과 연대의 삶을 살아왔다. 이런 탓에 협동조합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언제부터 인류가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지역사회 혹은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는지를 찾는 것과 똑같은 의미일 수 있기 때문에 최초의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즉, 협동조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기원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영국에는 스스로를 협동조합이라고 선언하고 협동조합 원칙에 따라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지방의회가 있다. 우리나라의 두레나 계 역시 협동조합으로 볼 수 있다. 협동과 연대의 정신에 바탕해서 토론과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협동조합이라고 한다면 그 원칙에 동의한 영국의 지방의회나 그 원칙에 거의 유사하게 운영되었던 두레나 계 역시 당연히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이후에 조금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협동조합 7원칙에 부합된 조직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협동 공동체 건설을 향한 로버트 오웬의 새로운 실험 - 뉴하모니

하지만 통상적으로 조직형태나 구성, 운영 면에서 현대 또는 근대 협동조합에 가장 근접한 협동조합을 꼽으라고 한다면 로치데일 선구자 협동조합(이하 ‘로치데일’)을 들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1851년 이전에도 많은 협동조합 또는 협동조합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 조직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알려진 로버트 오웬이 1800년과 1825년 영국과 미국에서 직접 경영한 뉴라나크와 뉴하모니이다. 오웬은 과잉노동과 빈곤은 생산성 하락을 가져올 뿐이며 노동자 복지는 생산성 향상과 직결된다고 믿음을 가지고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 영국의 뉴라나크 공장에서 새로운 실험을 했다.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단축하고, 10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시켰으며, 노동자를 위한 주택과 청소년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으며, 그리고 노동자 생활비 절감을 목적으로 공장 내 노동자들을 위한 식량 및 생필품 구입 점포 설립하기도 했다. 당시 평균 노동시간이 17시간이었던 점, 2~3세 아동 노동까지 횡횡하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오웬의 실험은 혁명에 가까운 시도였다. 특히 오웬이 가지고 있던 교육에 대한 확고한 원칙은 후에 로치데일에도 계승되어 협동조합의 원칙으로 정립되었다. 오웬은 1800년에 이미 뉴라나크에서 낮에는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세계 최초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밤에는 노동자를 위한 야간학교를 개설했다. 공업 생산노동자로써 능력 제고 뿐만 아니라 협동 시민으로써 자질 함양을 목적으로 이뤄진 교육과 학습은 오웬의 각종 실험의 원동력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뉴라나크는 영국 사회개량의 근거지가 되었다.

오웬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거대한 생산력은 사회개조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만인의 공동재산으로서 만인의 공동복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신념에 기초해서 오웬은 뉴라나크 성공을 전세계로 퍼뜨리기로 마음먹고 1824년 미국 인디아나주로 건너가서 현재 개성공단 크기의 토지를 매입해서 유토피아 건설 시도했다. 협동조합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회원 800명으로 구성된 “뉴하모니” 공동체가 그것이다. 뉴하모니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천명했다

• 모든 성인에 대해 평등한 권리
•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 따른 의무와 평등
• 재산의 공유
• 노동과 위안의 협동
• 자립적 생산과 소비를 통한 공산주의적 공동사회 건설

오웬의 확고한 신념과 성공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뉴하모니의 실험은 실패로 마감되었다. 800명의 공동체 회원 중 노동 가능한 인구는 110명 뿐이었고, 그나마도 갑론을박만 하며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뉴하모니의 소식을 듣고 거주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뉴하모니로 밀려왔다. 
어찌보면 오웬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던 듯하다. 오웬의 신념과 실험은 사회발전 수준에 기초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800명 만으로 자급자족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한 자급자족에 필요한 노동력과 조직, 설비, 기술 중 어느 것도 준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뉴하모니는 자율과 자치, 독립이라는 협동조합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하향식(Top-down) 공동사회였다. 개인과 집단의 자발적 헌신과 노력,  합의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 너무 많은 공동체였다. 오웬은 나무를 심지는 않으면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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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의 실험, 절반의 성공

그렇다고 오웬의 실패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웬은 산업혁명이 낳은 만성적인 실업에 따른 노동자 빈곤과 빈부격차 심화, 여성․아동 가리지 않는 엄청난 중노동, 교육 부재에 따른 무지 양산, 도덕과 교양 부재로 인한 사회 폭력과 갈등 심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붕괴와 같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주 구체적인 실험을 했다. 오웬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생산, 유통, 소비, 교육, 문화 등 인간의 모든 생활을 통합한 협동체 지향했다. 노동자들의 협동을 통해서 이러한 이상사회 건설하려는 오웬의 실험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상력을 제공했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로치데일 역시 오웬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또한 뉴하모니 실패를 통해서 협동조합은 구성원들의 협동과 주체적 노력없이 설립되거나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경험을 얻었다. 오웬의 시도처럼 초기 대규모 자원을 투여하여 공동체를 설립하려는 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협동조합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내는 규모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생산은 과잉 상태이지만, 다수의 인구가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뉴하모니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생산의 무계획성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적절한 유통 통로 부재에서 찾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로치데일은 그간의 실험의 성과들을 잘 이어받아서, 최초로 성공한 근대적 의미의 협동조합이 되었다.


소비자협동조합의 시작, 로치데일 협동조합

영국에서 1820~50년 사이에 협동조합 설립 운동이 활발했던 사회적 배경이 있다. 첫째, 노동자 빈곤의 원인을 나태와 무절제에서 찾고, 바스티유 감옥 수준의 강제노역장을 만든 신구빈법(New Poor Law)의 제정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은 폭발직전으로 격앙되어 있었다. 둘째, 인구의 삼분의 일이 극빈에 시달릴 정도로 영국의 기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40년대 로치데일 주민 6명 중 5명이 모포조차 없이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셋째, 남성 참정권 확보 등을 목표로 총파업과 무장봉기 등의 형태로 전국의 노동자들이 벌인 차티스트 운동이 무력진압 당하고 운동세력이 분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일부는 사회주의 구현만이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일부에서는 시민권의 획득을 위한 차티스트 운동의 지속만이 영국 정치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843년 세밑, 파업에 실패한 로치데일 직물공들 역시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은 로치데일에서 협동조합 점포 개설을 호소한 제이콥 호리요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로치데일에 노동자조합원을 위한 식료품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말할 수도 없이 가난한 조합원들은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출자금 1파운드를 모으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들의 지독한 가난함과 끈기 모두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28명의 개척자가 1844년 로치데일에 설립한 이 협동조합이 이전의 실험들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들이 세우고 실행한 로치데일 원칙에 있다. 1844년 창립당시 제정된 규약 1조는 다음과 같다. 
‘협동조합의 목적과 계획은 1인 1파운드의 출자금으로 충분한 금액의 자본을 조달함으로써 조합원의 금전적인 이익과 사회적, 가정적인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계획과 결정을 실행한다.’ 
그리고 로치데일은 1844년 창립 이후 1845년, 1854년 규약 수정하는 과정에서 아래의 아홉 가지 원칙을 남겼다.

• 1인 1표의 평등한 의결권
• 열린 조합원제도
• 출자금 이자 제한
• 이용고배당
• 현금거래
• (정직한 물품 판매를 위한) 순정의 품질과 양
• 교육 장려
• 정치적, 종교적 중립
• 개별 조합원에게 분배하지 않는 공동재산의 처분


로치데일 토드레인 매장 안에는 신문 열람실과 도서실이 개설되어 있었고, 매장 운영에 따른 경상이익의 2.5%는 교육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조합에서는 1861년 토지건설회사를 설립해서 조합원용 주거건물을 세우고 300채 규모의 주택 임대사업을 시행했다. 협동건축조합을 설립해서 주택자금 대출사업까지 했다. 실업 및 임금 삭감으로 고통받는 조합원을 고용하기 위해서 협동제분소 (Rochidale Co-operative Corn Mill)를 설립했고 협동조합농장 건설하고 운영하였다. 현재 영국 최대 생협인 협동조합 그룹(Co-operative Group) 산하 협동조합보험조합의 전신인 로치데일 질병공제조합을 설립해서 조합원 공제사업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도매사업연합회를 설립해서 소비-생산-유통을 수직적으로 통합하였다. 28명의 로치데일 설립자는 개인의 부의 축적이 아니라, 조직된 소비자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부의 축적이 어떤 결실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로치데일은 소비자의 자각적인 필요에 바탕해서 생산을 조직함으로써 과잉 경쟁과 낭비를 없앨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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