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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직업교육박람회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로봇을 이용해 축구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비행기도 두 날개 있어야 잘 날듯 ‘꿈과 밥’도 균형 잡혀야
진로탐색은 자아실현의 설계서…구체적 계획 가지고 있어야
진로와 직업이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편입된 후, 이에 대한 관심이 더 증가되었다. 수많은 출판사가 관련 서적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 대부분이 청소년 ‘진로 찾기’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 명칭 찾기’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밥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중요한 우리들에게 꼭 맞는 직업 찾기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단, 필자가 말하고 싶은 점은 밥만 추구하는 인생이 좋은 인생은 아니며, 꿈과 밥의 문제가 균형이 잡혀야 좋은 인생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로에서도 균형이 중요하다. 자아를 향한 꿈틀거리는 열정과 현실 속의 한 생활인이 직면하는 밥의 문제가 조화를 이뤄야 좋은 진로설계가 완성된다. 마치 비행기의 두 날개가 균형을 잡아야 멋진 비행을 할 수 있듯이, 나만의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이라는 도구와 꿈이라는 이상이 만나야 멋지게 날 수 있다.
진로 문제를 고민할 때 더 높은 연봉, 안정적인 직업, 일하기 편한 유망직업 찾기에 대한 관심은 크다. 반면 진로탐색의 문제에서 자아 찾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것 같다. 따라서 유망직업 찾기에 대한 관심의 일부를 내 속에 숨은 자아 찾기의 문제로 전환한다면, 장기적 인생진로 설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칼럼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통해 진로탐색에 주는 교훈을 찾아보고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자아에 이르는 길’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고자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살기 어렵다‘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첫 문장이자 모토(표어)다. (이하 번역문은 민음사 전영애 번역을 따른다) 이 글은 <데미안>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이 짧은 문장을 더 줄이면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이를 두 음절의 글자로 표현하면 바로 ‘진로’다. 소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의 눈으로 자아 발견의 소중함을 전하려는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 소설 전체를 읽지 않더라도 앞서 제시한 문장만으로 청소년 진로와 관련하여 생각할 만한 시사점과 고민거리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은 ‘꿈’이다.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스스로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마, 10대와 20대라면 바로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뭔지를 찾는 것 자체가 고민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반면 중년의 나이라면 바로 그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현실 속 평범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고민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뒷부분의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질문에 울컥하는 마음까지 든다. 현실이 그리 녹록하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찾지 못해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자는 찾았다 한들 그것을 실행하기에 본인의 노력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위해 살아볼 용기가 없어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일부는 그것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문장은 묘한 뉘앙스를 준다. 그 뉘앙스란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한편으로 쉬운 일이요 또 한편으로 어려워, 이중적이면서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데미안> 내용 곳곳에 이런 게 숨어 있다. 사실 귀결되는 내용을 보면, 자신의 마음속 검은 거울 위로 머리를 숙이기만 하면 자아가 발견된다. 하지만 내용 곳곳의 에피소드는 거울 위로 머리를 숙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진로선택은 ‘직업 명칭’ 찾기가 아니다이 작품은 한 사람의 진로와 관련하여, 형이상학적인 질문과 답을 준다. 예컨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등이 그 예다. 즉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면 새가 알에서 나오려는 투쟁과 고통이 있어야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진정한 자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아를 상징하는 새가 압락사스라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압락사스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공존하는 신이다. 즉 천사의 모습과 악마의 모습이 공존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자아실현의 문제는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가 공존하는 현실을 향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자아탐색이 이상과 환상이 아닌 현실적 관점을 유지해야 되는 이유다.
사실 <데미안>은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철학적이면서 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품성이 높지만 청소년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어렵다. 인간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 양쪽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아발견의 과정을 묘사하였기에 청소년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필자 생각엔 데미안은 다소 양자철학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선과 악, 또는 참과 거짓, 정답과 오답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작품의 이해를 어렵게 하며, 자아발견을 어렵게 한다.
앞서 제시된 모토처럼 자아발견과 실현이라는 문제가 어떤 사람에겐 매우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어떤 사람에겐 매우 어렵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명확한 사람이 있는 반면, 직업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도 많다. 자아발견과 실현이라는 문제에서 발견되는 사실은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은 구체적인 진로설계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이뤄야 될 직업 명칭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실현방안, 하고 싶은 일들을 명확히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아실현의 과정인 꿈이라는 질문에는 외교관, 시이오(CEO), 변호사, 박지성과 같은 축구선수 등의 직업 명칭이 답으로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직업은 진로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즉 진로탐색은 단순히 직업 찾기가 아닌 자아실현의 설계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직업은 진로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헤르만 헤세가 소설가이면서, 시인이면서, 동화작가이며, 수필가이며, 출판인이며, 정치적 신문 칼럼니스트라는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얻고자 한 것은 직업 명함이 아니다.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린 것이다.
따라서 꿈과 진로라는 문제를 단순히 직업 찾기라는 한정된 영역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자아탐색이라는 균형 잡힌 관점에서 접근해야 된다. 단순한 직업명이 아닌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탐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의 가사 일부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
이 노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농작물재배가’로 살면서, 소득보다는 님과 함께 농촌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노래의 화자처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자아가 발견되며, 자아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소설 <데미안> 속에서 싱클레어가 막스 데미안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듯, 오늘 하루 어디엔가 있을 자기만의 데미안을 찾아보고, 남진의 ‘님과 함께’와 같은 자신만의 진로설계도를 그려보면 어떨까? 진로탐색을 단순한 직업탐색에서 자아탐색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진정한 자아실현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상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 <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